2002
은빛 바람꽃을 보다 송은갤러리
Critical essay
전시장에서 코끝이 찡하게 울리며 가슴을 후벼 파는 미술은 더 이상 없다.
오히려 TV 뉴스에서, 휴먼 다큐멘터리에서, 신문의 사회면에서 감성을 자극하는것들이 압도적으로 늘어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야말로 감정이 획일화된 시대에 살고 있다. 슬프거나, 기쁘거나, 분노하거나, 즐겁거나, 사랑하거나. 인간의 감정들은 그 진폭이 정해진 치수만큼의 기준치에 도달하지 않으면 그것은 슬픔이 아니다. 기쁨도 아니다.
디지털 시대.
그것이 있는지, 그것이 없는 것인지를 어떤 근거로 가를 수 있을까? 하지만 현대인들은 잘도 나누고 잘도 판단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사물이 아닌 인간의 감정과 가치판단의 주요한 관점을 나누는 기준은 과연 무엇인가를 놓고 무수히 많은 철학자와 예술가들이 고민해 왔다.
그중에 그녀는 매우 색다른 판단의 가치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드러내놓기를 좋아하는 이 시대에 정반대로 감추기를 시도하는 강리나의 작업방식에 있다.
수학적 암호의 등식에서, 이미지의 사회적 코드화에서 그녀의 작업은 일반인들이 어린 시절 한번쯤은 했음직한 자신의 싸인 만들기나 비밀의 일기장에서 나타나는 암호화와 상징화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왜 그녀는 감추기를 원하는가?
딱 부러진 2진법의 디지털환경 속에 자신도 모르게 젖어든 우리시대, 내가보기에 그녀는 개연적이고 지극히 아날로그적 감성지대에 있다.
그녀의 감성은 중간지대가 존재한다. 최저와 최고를 구분하기 힘든 그 중간지대에 슬프지도 않으면서 기쁘지도 않은 이 시대에 감추어진 휴먼 스케일이 존재한다.
그녀의 작업 속에 들어가서면, 나는 바람꽃을 본다.
이 광록 (KBS PD, 디지털미술관 연출)